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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이 멎은 자리에서

  • 13시간 전
  • 2분 분량
살고 싶었다. 다만, 삶이라는 그릇에 담기엔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컸을 뿐이다.

2026년 7월 7일



3주 째 매일 저녁 사람을 만나고 있다.

약속을 너무 많이 나가서 번아웃이 올 법도 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약속에 참석하는 이유는 집에 혼자 남아있을 때 더 괴롭기 때문이다. 친구와 있으면 부정적 생각이 차오를 공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오고 친구를 떠나보낼 때 찾아오는 공허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와의 시간이 좋다. 근 한 주간은 저녁마다 친구를 만나기 앞서서도, 만나서도, 헤어질 때도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너무 미안한데도, 그래도 보고 싶었고 또 같이 있고 싶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던걸까? 이 눈물은 언제 멈출까?


매일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요즈음 나를 잡아삼킨 감정의 이름은 '슬픔'임이 분명하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쉬움, 씁쓸함, 서러움, 속상함, 자기 연민, 체념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듯 하다. 요인은 다양한데, 1) 내가 겪는 괴로움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2) 주변 사람들이 나의 괴로움을 알아줄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알아줘야만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지배적이다. 그 생각 끝에서 나의 선택은 '놓음'이었고 그 선택과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무참할 만큼 쓰라리고 너무나도 아프고 또 괴롭다. 또 눈물의 까닭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나 자신에게 애써 괜찮다고 다독여보고 있다. 매일을 그렇게 외치다보니 이제 조금 고요해진 듯도 싶다.


괜찮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어쩌면,

안 괜찮아서 괜찮다.



완벽하고 깔끔한 마무리란 없어

준비된 상태라는 것도 없지

근데 다음으로 넘어가기에 충분히 고요한 때는 있는 것 같아


매 순간 소음으로 존재하던 수많은 질문들이 답을 찾아가고

머리 안의 마구 꼬여있던 매듭들이 풀려지는 기분

내가 저지른 지난 날들의 과오와

내가 일으킨 화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듯한


그 열쇠는 나에게 쥐어져 있었고

문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내 앞에 서 있었어.

이제 남은 것은, 조용히 손을 뻗는 일뿐이야.

그리고 더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4월 20일에 작성한 일기장에 기억에 없는 메모로 보이는 문단이 있다.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결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극심한 자기 혐오와 자책, 그리고 감정 검열에 대한 혼란. 나를 밀어내는거라 느꼈다기보단, 살려고 마구잡이로 아무거나 붙잡고 상담한게 잘못됐던거 같아서, 잘했다해줘요, 중요한가보죠 그게, 잘하고 있다는 말이. 선생님 치료 역할 침해하지 않으려고 선을 스스로 긋고 밖에서 감당하려 했어요, 혼자 멋대로 판단해서 죄송합니다. 도와주세요. 실은 나 지금 마음이 아파요, 같이 있어주세요.

처절했다. 슬펐다. 간절했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 보니, 참 많이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이제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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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by Hayoung Harv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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