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음이 멎은 자리에서
살고 싶었다. 다만, 삶이라는 그릇에 담기엔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컸을 뿐이다. 2026년 7월 7일 3주 째 매일 저녁 사람을 만나고 있다. 약속을 너무 많이 나가서 번아웃이 올 법도 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약속에 참석하는 이유는 집에 혼자 남아있을 때 더 괴롭기 때문이다. 친구와 있으면 부정적 생각이 차오를 공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오고 친구를 떠나보낼 때 찾아오는 공허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와의 시간이 좋다. 근 한 주간은 저녁마다 친구를 만나기 앞서서도, 만나서도, 헤어질 때도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너무 미안한데도, 그래도 보고 싶었고 또 같이 있고 싶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던걸까? 이 눈물은 언제 멈출까? 매일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요즈음 나를 잡아삼킨 감정의 이름은 '슬픔'임이 분명하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쉬움, 씁쓸함, 서러움, 속상함, 자기 연민, 체


괜찮다고 말해주었으면 해
어느 시기부터 어려워진 도움 외침. 어떻게하는건지 너무 어렵다. 도움 받을 자격은 무엇이며 무엇임을 알아도 충족은 되나 싶고 결국엔 내가 다 해결해야함을 알아버린 요즘. 도움 받고 싶어요 라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한 달 뒤면 끝맺어질 의사와의 면담. 그 끝에 마주할 건 연약한 나와 그런 내게 가혹한 나 자신 뿐. 여전히 나는 나를 살해할 수 있는 스스로와 함께 매일 잠에 드는 것이 두렵다. 의사와 마지막으로 상담할 때 라이프서클 단체에서 안락사할 수 있도록 지난 8년간의 고통을 증명해주실 진단서라도 받아야하나 싶은, 그런 쓸데 있는 듯 없는 듯한 생각이나 든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걸 남에게 이해를 바라니, 남이 아무리 이해해줘도 절대 그 마음은 충족이 될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랬다. 반박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나는 틀렸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울타리에 그렇게 갇혀졌다. 그래도 이제 이 지긋지긋한 자살사고를 안고 살아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