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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 2023년 4월 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4월 15일

2023년 4월 10일



2023년 선생님과의 치료를 새롭게 시작하며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변화를 꼭 이 곳에 기록하고 싶어 노트북을 펼쳤다. (여기서 과거는 2021년, 현재는 2023년을 나타낸다.) 2021년의 기록을 보며 현재 드는 생각을 잇따라 작성하였다.

어쩌다 돌아보니 지금의 '나'에 도달하게 되었고, 내 의지로 이렇게 되어온 부분들이 크기에 실은 절망적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해답을 찾고 싶지만 그런 해답 따위는 없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도저히 사고의 변형이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결국, 병적 상태의 지속일 뿐이다.


<2021년 4월의 기록에서>

Q1) 2021년의 김하영이 생각하는 본인의 가장 큰 문제는?

A) 모든 것을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생각하고 이론적으로 해결하려고 함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노력해야함"

: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자세를 버리고 당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그 감정을 음미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

- 모든 것을 이론적으로 해결하고 '감정'이 들어설 틈을 철저하게 막고 내가 생각하기에 좋지 않다 판단되는 모든 류의 감정을 '아니다'라고 부정해옴.

+ 나를 정의내림에 있어서 나는 없고 내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의 나로 나를 정의내리고 구성해 왔다.


2023년의 나는...

이제는 감정을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 배우고, 여전히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고, 괜찮지 않을 때 아니라고 부정하고자 하는 심리는 강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의 감정을 돌이켜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나를 구성하는 주요 기둥이 내가 없는 나의 인간관계였다면, 그래서 과거에는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기는 것이 나에게 큰 괴로움을 안겨줬다면 이제는 나 스스로가 주축이 되어 타인이 없는 나 자체로서의 가치를 찾아가며 더 독립적인 형태가 되었다. (물론 완성형은 절대 아니다. 아직도 나는 작고 여리고 쉽게 부서진다. 하지만 독립적이라는 것이 혼자라는 것은 아니니까!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2년 뒤의 나는 어떨지 궁금하다.) 2년 전 나는 사고의 변형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Q2) 2021년의 김하영에게 성공이란? 성공한 삶이란?

A)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가되 끊임없이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삶의 태도를 지니고, 선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cf) 노력한다는 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 여기서 노력하거나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함. 목적의식은 삶의 이유, 고통스러움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삶의 동력체와도 같다. (물론 탐색 결과 이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살아가며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존재하며, 이러한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2023년의 나는...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2년 전에 하고 있었다는 것 조차 잊고 있었다. 공책을 펼쳐 발견하고 다소 놀랐다. 오히려 성공에 대한 가치관을 생각보다 바르게 가지고 있던 과거의 내가 신기했다. 요즘 나는 그런 구체적 생각 없이 그저 주어진 하루 24시간, 현재를 살아가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의 나는 미래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내게 미래라는 단어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에 돌아가는 생각 뿐만 아니라, 당장 단기적 시점에서 2주 뒤의 나, 5월의 나를 상상하는 것도 너무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현재에 집중하니 신경 쓸 것들이 줄어들어 좋다. 물론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침체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우선은 here-and-now라는 키워드 아래 살아가고자 한다.


Q3) 2021년의 김하영이 가지고 있던 치료의 방향성 및 목표는?

A)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보다는 '지금 이 삶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고통을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에 가까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좋아보여도, 내가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행복도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cf) 하지만 과연 이것이 이룰 수 있는 목표인가에 대한 의심은 가득하다.

확실한 내 마음은 희망,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or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한다는 것.


2023년의 나는...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나도 고쳐질 수만 있다면 꽤나 괜찮은 사람일텐데."라는 생각에서 몇 년간 머물러왔다. 연서랑 성아는 이런 내게 '지금도 괜찮아'라는 말을 수십번도 넘게 해주었다. 첫 몇십번은 그냥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위로의 방식으로, 지금의 나도 괜찮다고 해주는 그런 말이라고 생각했다. 수십번을 듣고 나니, 어쩌면 정말 고쳐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주 무너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삶을 살기 위해 투쟁하는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그 말들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어느새 자연스레 나 자신을 오답이라고만 생각하던 내가 아닌 치유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몇 백번도 더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다시 나는 망가졌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금 드는 이 생각들과 감정들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준 너네가 너무 고맙다. 내 인생에는 없을 것 같던 괜찮아졌다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다시 안좋아지더라도 이 기억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버틸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이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향성은 이전 게시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형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홀로 무참히 괴로워하며 날 것의 감정과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을 잊고 말았다. 이번 한국에 있는 기간에 선생님과 함께 안전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살 사고가 포기가 되지 않아. 내 마음 속에 10년간 자리잡고 있던, 어떻게보면 꿈이라면 꿈인데, 그것을 내려놓는 것에 거부감이 들고 잘 안되는 것 같아. 자살 계획을 세우고 직전에 번복하는 것도 죽을 정도의 충분한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투영될 것 같아서 두려워. 그리고 나아진다 한들 또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


자살 사고나 계획은 내려놓는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하는 것이야. 포기라는 단어는 자살 따위에 쓰는 말이 아니야. 언니는 이제 번복하는 삶을 살아야하는거야. 여기서 번복하지 않는게 오히려 돌아가는거야.

그럼에도 돌아가면 어떡해? 돌아가도 괜찮아?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기는 할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거야.

<2022년 겨울, 연서와의 대화 중>

사실 선생님과의 면담이 사라지기 전부터 연서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연서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연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이 너무 좋아서, 연서한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하곤 했다. 그리고 너는 너가 아는 선에서 내 모든 질문들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대답해줬었지. (생각해보면 미국에 있는 동안 나는 연서를 상당히 많이 괴롭혔다.. 덕분에 미국에서의 첫 학기를 무사히 마쳤고 지금의 내가 있지만!)


변화는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나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그 모습에 다가가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는 너의 말도 아직도 기억에 남아. 어떤 문제도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믿는다는 너의 말에, 처음에는 너무 막연하고 그 시간이라는 것이 무한하게만 느껴졌다면,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보면, 나도 더이상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곁에 있어줘서, 자주 너에게 답답한 모습을 보이는 그런 나인데도, 도움을 찾아 너에게 손 뻗을 때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줘서 고마워.


이건, 너가 진심을 담아 내게 보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무사히 닿았음을 알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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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by Hayoung Harv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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