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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답이 아니다.

  • 2023년 3월 24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28일



다시 한번 뵐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 그 기회를 마주한다.

선생님과 면담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더 큰 감사함을 느끼고 선생님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도움받고 싶다.

이 모든 생각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이 내게 생겼으면 좋겠다.

영구적이지 못하더라도 그 공간 속에서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지 못해도, 무너지지 않고 싶다.

도움 받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나는 지금 도움받고 싶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성했던 문장들이다.

200회도 넘게 선생님과 면담하면서 마지막 4회가량을 제외하고는 나는 불안했다.

사실 선생님께 말하는 게 그렇게 무서워할 것이 아닌데 나는 대화를 그리도 무서워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 꺼내는 것이 두려웠고, 들으면 무너질 것 같은 답변을 들을까 봐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겁에 질려 몇 번의 검열을 거친 후에야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필터링을 거치고 나온 것은 사실과 먼 경우도 많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들도 셀 수 없다. 실은 그런 마음조차 편하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어리고 미숙하기만 했다.


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하지 못했던 8월 말부터 나는 미국에서 마음에 짐이 가득할 때 메모에 선생님께 말하듯이 내 마음을 써 내려왔다. 오늘이 되어서야 다시 읽어 보니 마치 전달되지 않은 우편물로 가득한 우편함을 보는 것 같았다. 아,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내 뇌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미화'의 능력을 높게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나날들이 더 많은 줄 알았으나, 행복의 날은 그렇지 못한 날의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주로 나는 괴로웠다. 어쩌면 미화된 채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괴롭더라도, 꼭 그 감정들을 모두 기억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부정적인 것들을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긍정적인 것들은 주로 기억이 오래가지만 부정적인 것들은 '미화'되어 시간에 가려져 마치 내가 겪는 이 고통이 새로운 것이라고 느껴지고 이전에 잘 지나 보낸 일의 반복임에도 마치 점점 안 좋아지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서가 좋은 것들을 기록하는 습관이 좋다고 해서 둘 다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안 좋은 거 안 쓰는 건 못 버리겠더라 하핫 미안..ㅎ 덕분에 좋아지기도 한다는 것도 체감이 된다!)


이건 말 못 했던 건데, 한국에 와서 나는 백수가 되며 새로운 사회적 고립감을 자주 느꼈다. 미국에서 홀로 방에서 괴로워하며 느꼈던 고립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세상에 나는 먼지처럼 일단 존재하기는 하는데, 있어서 좋을 건 없는 그런 존재가 된 듯했다.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잘 없어지는 것도 비슷하네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이전과 다르게 힘들었고, 분명 내게 친구는 적지 않은데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마음도 자주 들었다. 피부 질환까지 겹치며 달갑지 않은 충동적인 생각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마다 내가 느끼는 절대 가볍지 않은 고통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렇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건가 싶었다.


이제와서 보니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나, 이런 고민들 끝에 나는 판단과 결정을 해야했다. 이렇게도 살아갈 것인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지금의 나는 살아갈 수 없는 건지.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괴롭게, 그래서 외롭게 살아야하는 거라면 나는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형태의 생명체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는 않은 느낌이라 이 판단은 후회로 가득 찰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생존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 선생님을 다시 찾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살아가고픈 의지 없이 면담하며 겨우겨우 생을 연장했다면, 이번에는 나아지고자하는 의지를 품고 면담에 임하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다. 과거의 나는 도움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면담하러 뵙기 전이라 그런지, 선생님께서 분명 큰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도움받고 고쳐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이, 한 달이 흘러 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이 희망이 내겐 소중하다. 그리고 그 희망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간직하고자 한다. 단 며칠 만에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간절히 소망하는데 인격적으로 더 성장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울대학교 김영민 교수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책에서 내 가치관을 바꾼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희망은 답이 아니다.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형태가 답이다.

언젠가는 나도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형태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줄인다.



글이 다소 길어졌다. 여기까지 다 읽어줬다면 진심으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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