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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어떤 감정이 찾아왔다.

  • 2022년 10월 3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28일

2022년 10월 3일


이번 주에 예정된 두 개의 퀴즈를 대비하여, 오늘 계획된 일은 분명 많았으나, 오늘 나는 시카고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역학 강의를 보는 것 외로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가끔 이렇게 그 어떠한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겠는 날이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불안하고, 또 그렇다고 어떤 공부를 할 수도 없는 그런 날. 원인을 찾아보자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도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인지, 형태 없는 불안과 우울이 찾아와서 그런 것인지, 아님 단순히 공부가 그렇게 급하지 않다고 느껴져서인지, 무엇이 날 괴롭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그런 날.


미국에 와서 생긴 변화인 것 같은데, 근래의 나는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나로부터 분리되어 3인칭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회색으로 칠해진 이 벽에 둘러싸여 혼자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바라보며 나 자신으로부터 괴리감이 느껴지곤 한다. 무엇을 위해 혼자만의 투쟁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방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특별한 상황이 있지 않는 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에,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공간에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세상과 분리된 듯한, 그런 비현실감에 갇힌 느낌이랄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나 조차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다, 잠깐 생각의 공백이 찾아오면 눈물을 흘리곤 한다. 나는 이 눈물을 이유 없는 슬픔이라고 불렀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 때문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어떤 신경학적 이유로, 혹은 호르몬적 변화로 눈물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알았다. 이것은 이유 없는 슬픔이 아니라, 이유 '모를' 슬픔이라는 것을. 들여다보기 무서워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에, 아직 내가 모르는 슬픔이라는 것을. 하지만 혼자 들여다보기 무서운 걸 어떡해.


이 감정이 슬픔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이름 모를 감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이 마음이 겉으로 보기에는 검붉은 색이지만 아마 여러 색깔의 감정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겠지. 분명 그 속에 예쁜 색도 있을 거라 믿는다. 어찌하였건, 그렇다. 오늘은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다. 그렇다. 오늘은 어떤 이름 모를 감정이 내게 찾아온 날이다. 당장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머무르다 금방 떠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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