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다가와주길
- 2019년 12월 9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10월 1일
Torment with Torture
2019년 12월 9일

작고 어두운 상자에 대해 고민해본다. 앞에 보이는 가느다란 빛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다. 차가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내게 갑자기 나타난 저 빛의 근원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조그마한 틈새였다. 누군가가 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얇은 실 바늘로 빛을 선물해주었나 보다. 저 빛이 그저 나를 달래기 위해 누군가가 흘려보낸 빛인지 나를 둘러싼 공허함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내려준 빛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정체를 알아 버릴까 봐 두렵지만 만나고 싶고 또 마주 보고 싶다. 혹시라도 헛된 희망을 안겨준 것이라면? 그저 착각을 일으키기 위함이라면? 일시적인 무감각함을 준 것이라면? 하지만 감각으로만 느껴지는 저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더더욱 간절해진다. 하지만 나는 상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있는 내게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빛줄기를 오선보로 하여 마치 화음을 이루던 음표들이 내 피부에 닿는 듯하였다. 내게 물어본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대답했다. 이 방을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내 안의 벽을 허물고 나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 벽을 허물고 나면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고. 조그마한 구멍으로 들어온 목소리는 벽을 수도 없이 부딪히며 내 귀에서 맴돌았다. 모든 사람은 다 스스로의 방이 있고 그 온도와 밝기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고, 변화는 찾고 좇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고 기다림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음표들은 어느 순간 내 몸속으로 들어와 꼬이고 꼬여 흉측한 어두움에 붉은색을 더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부정하고 있었다. 나 역시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변화가 기다림의 끝에 찾아온다는 말이 전혀 설득이 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수도 없이 죽기를 실패하고 살아온 지옥 같던 5년이 고작 ‘기다림’이라는 말 하나로 정당화되기에는 너무 허무해서인가. 내게 더 이상 ‘기다림’은 의미가 없다. 내 마음속 공허함을 키울 뿐이다. 이제야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현실을 직시한다. 잠시 잊고 있던 세상의 잔인함을 알려주는 것일 뿐, 저 구멍은 내 숨구멍이 아니었음을. 작은 방안이 비록 춥고 고통스럽더라도 이곳이 내게는 최선이라는 것을. 더 이상 방법을 알고 싶지 않아 졌어. 내게 아파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아 줘. 상처는 너무 쉽게 점점 짙어지는데 치유는 잘 안되거든. 이 고통 끝에는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조차 알고 있거든. 조금만 시간이 흘러가면 적응할 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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